사랑의 7단계의 마지막은 이렇다. 'I AM YOU'.

 

아마도 처음에는 누군가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서 만들었던 것처럼 보이는, 인터넷에 떠도는 어느 '사랑의 7단계' 에서는 심플한 영어 문장 일곱 가지로 사랑을 표현한다. I ____ YOU 형태에서 간단하게 바뀌는 영단어만 적어 보자면, Miss / Think / Like / Love / Want / Need/ Am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보통 '사랑'이라는 감정을 표현하는 데 쓰이는 단어 Love는 7단계의 중간 지점에 불과하다. (쓰다 보니 의아하다. 왜 그리움이 사랑의 첫 단계가 되었을까. 그냥 어느 순간 그리고, 생각하다가 좋아하게 되는 걸 말하고자 했던 걸까?) 어쨌건 사랑하고, 무엇인가를 원하고, 필요로 하다 보면 내가 그 사람이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아직도 요원하기만 한 그 끝은 있기는 할까.

 

나는 호불호가 뚜렷한 편이어서, 싫다고 결론 내린 것에 대해서는 깊은 접근을 하지 않는다. 이미 좋고 싫음을 판단할 때에 웬만한 생각을 다 마쳤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세상에는 내가 싫어하는 것만큼 좋아하는 것들이 많고, 이게 왜 좋아서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사고를 촘촘하게 하는 게 더 즐겁고 내 인생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물론 처음부터 이런 '깨달음'을 타고난 건 아니다. 사랑의 반대는 무관심이고, 속칭 '마플'이라고 불리는 부정적인 기류가 내게는 단기적, 장기적으로도 꽤 악영향을 미친다는 걸 몇 번의 경험을 통해 배웠다. 이전에는 어떤 감정이든 다 쏟아내야만 속이 후련해졌다면- 이제는 좋고 예쁜 것들에 대한 얘기는 하나라도 더 남기고, 부정적인 건 어느 순간에라도 적당히 쓸려 내려갈 수 있게끔 놓아주려고 한다. 

 

그럼에도 가끔은 속이 울렁거린다. 뉴스에 나오는 사건사고가 가끔 눈에 들어오면 끔찍하고, 매해 다가오는 (이제는 근 10년은 지나버린) 수능 철이 되면 유독 더 쌀쌀해지는 날씨도 신경 쓰인다. 흔히들 이런 걸 '공감성 수치가 높아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하던데, 내 생각에 나는 퍽 그런 편이다. 내 얘기를 할 때에는 물론이고, 타인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리액션이 풍부해지는 건 아마 그 반증이 아닐까. 나는 내 상황에 대해 최대한 상세하게 설명해서 공감을 이끌어내려는 사람이지만, 그만큼 들을 때에도 쉽사리 빠져들곤 한다. 그래서 한때는 무슨 공모전에 도전하겠답시고 외쳐 놓고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서 글로 만들어 내는 행위가 참 어려웠다. 물론 지금도 어렵다. 문학 작품이라면 어쨌든 벌어져야만 하는 드라마틱한 상황에 쓰는 내가 더 깊게 빠져드는 탓이었다. 이게 글쟁이로 밥 벌어먹고 살 만큼의 소질이 있는 건지, 그저 취미로 머물러야 하는 건지도 가끔 헷갈렸다. 이제는 '글 쓰는 걸 좋아한다'라는 크고 큰 덩어리로 뭉뚱그려서 말하기는 한다.

 

가끔 삶이 버거우면 내 인생조차도 감당하기 벅차서, 타인의 인생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일 따윈 하지 않아야겠다고 마음먹곤 했다. 하지만 요즘은 너무나도 상세하게 사람 대부분의 인생들이 공유되는 시기라서- 알고 싶지 않았던 정보를 한 움큼 손에 쥐고는 괴로웠던 적도 왕왕 있다. 적당하게 좋아하는 사람들의, 캐릭터들의 극적인 순간에 순식간에 몰입해서는 과열된 감정을 쏟아내는 일이 가끔 버겁다. 한참을 지나버린 과거의 나쁜 기억 한 조각을 발견하고, 이 세상에는 절대 없을 것이 분명한 펜시브라도 가진 양 순식간에 그 기억 속에 빠져드는 일 또한 어렵다. (롤링 여사를 무시하는 건 아니다. 그녀의 잦은 설정 충돌에 일개 독자는 꽤 많이 실망했었지만.. 여전히 그 세계관을 사랑하기도 하니까.) 오늘도 일하다가 갑자기 인쇄소 입장에서 고민하다 일을 키우곤 하는 바보 같은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성향이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이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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