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수에서 빼는 일, 음수에 더하는 일. '회복'은 어느 쪽일까?

 

인생에서 겪는 좋은 일과 나쁜 일의 총량은 비슷할까?

마치 삶에도 저울이 있는 것처럼, -이리저리 그만 좀 재라는 말을 들었던 인간답다.- 오늘도 끊임없이 여러 개의 양팔저울이 내 옆에서 갸웃거린다. 아주 사소한 고민을 얹은 손바닥만한 크기의 저울들 수십 개가 모여 자그마한 숲을 이루는 게 일상이고, 또 가끔은 아파트를 세워 둔 것 같은 엄청난 크기의 저울이 존재감을 뽐내며 등장한다. 그리곤 내가 만들었지만 마치 저가 나를 창조한 양 '이걸 고민하지 않으면 다른 건 없어!'라고 엄포를 놓고.

 

이전처럼 고민하는 것 자체를 고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때는 그랬었다. 나는 왜, 어느 것도 쉽사리 넘기질 못하고 이렇게 손에 쥐고 있어야하는지 모르겠다고. 여기서 일상보다 스트레스가 조금 더해지면 그냥 좀 단순하게, 아무 생각도 없이 살고 싶다고도 생각했었다. 그럼 세상은 온통 아름다워보이겠지, 같은 속 편한 소리와 함께. 그냥 생각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다가 아주 거대한 후폭풍을 (아직은 맞아본 적 없지만) 맞을 수도 있다는 무의식의 두려움이 항상 나를 깨우곤 했다. 특히 대학 입시를 지나고 학부 과정을 소화하면서는 내내 그랬던 것 같다. 뭔지 모르지만 미래의 내가 자꾸 채찍질하는 기분이었달까. 사실 아무도 주변에서 날 재촉하지는 않았었는데. 기업들의 취업 설명회를 쫓아다니고, 멘토링 프로그램을 듣고, 서울 모 컨설팅 업체에 상담을 받으러 가서는 이과생은 절대 아니라는 엉뚱한 결론을 얻어 오곤 했었다.

 

이제는 조금 받아들이는 편인 것 같다. 불확실한 미래는 언젠가 끝나는 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될 거고, 다만 그 어느 순간을 위해 준비하면 좋을 것들이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비되지 않은 무언가가(보통 안 좋은 류의 일이겠지) 코앞에 닥친다면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다는 것. 아주 큰 일을 겪어서 내가 상처입더라도, 어떻게든 성장하고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조금 자만한 믿음도 함께. 그 믿음이 지난 몇 달간 힘겨웠던 내가 다시 글을 적는 원동력이 되었다. 발행 예정 기간이었던 11월을 넘기고, 12월과 1월도 휩쓸려 지나가면서 어느 새 약속했던 발행 기간 한 회차가 넘어가버린 2월에 이 글들을 마감하면서 문득 그 생각을 다시 한다.

 

간단하게 사진 하나, 트윗 하나로도 생존 신고를 하고 일상을 공유할 수 있겠지만- 아직도 구식인 사람은 이렇게 드문드문 떠올리고, 적었다가 지우고 고치고를 거듭하는 짧은 꼭지 몇 개로만 생존 신고를 하는 법인가 보다. 폭풍같은 나날들이 지나는 와중에 때로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자잘한 흔적이 간단한 연락 하나, 글자 한 줄로 없어진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어쩌면 어느 것은 극복했다는 것조차 모르고 지나갔겠지. 거창한 바람일 수도 있겠으나 이 글을 적으면서, 또 읽으면서 누군가의 어느 무엇이라도 좋아지길 바란다. 아주 조금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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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

 

아주 어렸을 때, 그러니까 대충 중학생 즈음의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지금의 내 모습을 간혹 놀라워하곤 한다. 어느 정도 그랬던 것 같기는 하나, 그들이 내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놀라운 수준이다. 그 시절의 나는 뭐든 완벽해야만 하는 완벽주의자였으며, 내 의견과 맞지 않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고집쟁이였다. 펼치는 의견은 강력하고, 어조는 따박따박했으며(이하 생략). 지금 생각해 보면 골이 아프다. 

 

올해, 아, 해가 바뀌어서 작년에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분들에게 응답을 부탁했던 설문지가 있었다. 해달라고 조르고 패기롭게 들이밀 때는 언제고, 실은 한참 동안 열어 볼 엄두가 나질 않았다. 뭔가 두려웠달까. 무기명이라 누군지는 모르지만 아마 아주 가까이에서 나를 들여다 본 사람들일 텐데 얼굴을 마주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에게 뭐라고 코멘트를 남겼을 지 전혀 가늠이 가질 않았다. (아무래도 나는 생각보다 나에 대해 잘 모르는 게 분명하다.) 그리고 오늘, 이 꼭지를 적기 전 답안지를 몰아서 살펴 보았다. 와, 무서운데 재밌어.

 

가장 놀라웠던 점은 모두가 비슷한 얘기를 했다는 거다. 그렇다면 어찌 됐건 나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비슷한 모습으로 보였다는 거고, 그럼 그게 내 본질과 가까울 확률이 매우 높다는 얘기겠지. 모두가 아마 그렇겠지만 내게도 내가 그리는 이상적인 모습들이 있고, 이렇게 보이려고 의식적으로 애를 쓰는 부분들도 있겠지만- 아마 이 설문에 응답했을 분들에게 보이는 나는 이상적인 모습인 척 하기보다 제정신을 잃고 떠들어댔을 확률이 높았다. 언제부터였지, 아마 고등학교 때부터 입이 트이기 시작해서는 지금까지도 조용히 하질 못하니까.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면 더더욱.

 

나는 어영부영, 되는 대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보이는 모습은 딱히 그렇진 않았던 것 같아 새로웠다. 다만 뭘 하든 지구 끝을 파버리겠다는() 느낌이었던 건지.. 안타깝게도 나는 그럴 체력도 근성도 부족하다. 예전에야 그랬을 지는 몰라도 지금은... 겨우 하던 취미생활이나 계속하고. 아는 게 그거밖에 없으니 다시 돌아가고. 타성에 젖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이미 충분히 타성에 젖은 것 같은데. 요즘은 최대한 그러지 말아야지, 꼰대는 되지 말아야지? 같은 생각은 계속 하는 것 같다. 하루이틀은 매우 길지만 몇 달은 어느 새 지나가버리는 무시무시한 일상의 권태에 빠져들지 않도록.

 

장단점, 매력, 20년 후 미래 등등의 어렵고 불편할 수 있었던 세부 항목들에 친절하게 답해준 분들께 이 꼭지에서 다 함께 감사 인사를 전한다. 비록 인터넷으로 보았지만, 실은 0과 1일 여러분의 답변 한 글자 한 글자에서 놀랍게도 피사체를 향한 깊은 애정(!)이 느껴졌다. 그런 류의 애정이 없었다면 이런 귀찮은 설문에 응답하지 않으셨겠지. 몇 달 전의 답변이 지난 두어 달의 침체기를 허우적대다 겨우 수면 위로 올라온 이에게 닿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응답해주신 분들은 반드시 다음에 나를 만날 때 생색을 내 주시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누군가에게는 '방대한 음악적 취향 스펙트럼을 가진 자' 이기도 하면서 '저녁 11시 이후에 회사 문을 닫지 않은 것 같다며 시무룩한 목소리로 전화를 거는 소심한 자'이고, '심심하다고 하지만 정작 안온한 일상을 벗어날 생각은 별로 없는 사람'이기도 한 나의 20년 후는 모두가 꽤나 다르게 예측했다는 게 매우 재미있었다. 나중에 추억팔이 할 예정이니 모두가 그 때에도 결과를 부디 지켜봐주셨으면 좋겠다.

 

이미 완벽한 삶을 살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에 도취한 2021년 구정 연휴에, 사랑을 담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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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7단계의 마지막은 이렇다. 'I AM YOU'.

 

아마도 처음에는 누군가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서 만들었던 것처럼 보이는, 인터넷에 떠도는 어느 '사랑의 7단계' 에서는 심플한 영어 문장 일곱 가지로 사랑을 표현한다. I ____ YOU 형태에서 간단하게 바뀌는 영단어만 적어 보자면, Miss / Think / Like / Love / Want / Need/ Am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보통 '사랑'이라는 감정을 표현하는 데 쓰이는 단어 Love는 7단계의 중간 지점에 불과하다. (쓰다 보니 의아하다. 왜 그리움이 사랑의 첫 단계가 되었을까. 그냥 어느 순간 그리고, 생각하다가 좋아하게 되는 걸 말하고자 했던 걸까?) 어쨌건 사랑하고, 무엇인가를 원하고, 필요로 하다 보면 내가 그 사람이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아직도 요원하기만 한 그 끝은 있기는 할까.

 

나는 호불호가 뚜렷한 편이어서, 싫다고 결론 내린 것에 대해서는 깊은 접근을 하지 않는다. 이미 좋고 싫음을 판단할 때에 웬만한 생각을 다 마쳤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세상에는 내가 싫어하는 것만큼 좋아하는 것들이 많고, 이게 왜 좋아서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사고를 촘촘하게 하는 게 더 즐겁고 내 인생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물론 처음부터 이런 '깨달음'을 타고난 건 아니다. 사랑의 반대는 무관심이고, 속칭 '마플'이라고 불리는 부정적인 기류가 내게는 단기적, 장기적으로도 꽤 악영향을 미친다는 걸 몇 번의 경험을 통해 배웠다. 이전에는 어떤 감정이든 다 쏟아내야만 속이 후련해졌다면- 이제는 좋고 예쁜 것들에 대한 얘기는 하나라도 더 남기고, 부정적인 건 어느 순간에라도 적당히 쓸려 내려갈 수 있게끔 놓아주려고 한다. 

 

그럼에도 가끔은 속이 울렁거린다. 뉴스에 나오는 사건사고가 가끔 눈에 들어오면 끔찍하고, 매해 다가오는 (이제는 근 10년은 지나버린) 수능 철이 되면 유독 더 쌀쌀해지는 날씨도 신경 쓰인다. 흔히들 이런 걸 '공감성 수치가 높아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하던데, 내 생각에 나는 퍽 그런 편이다. 내 얘기를 할 때에는 물론이고, 타인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리액션이 풍부해지는 건 아마 그 반증이 아닐까. 나는 내 상황에 대해 최대한 상세하게 설명해서 공감을 이끌어내려는 사람이지만, 그만큼 들을 때에도 쉽사리 빠져들곤 한다. 그래서 한때는 무슨 공모전에 도전하겠답시고 외쳐 놓고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서 글로 만들어 내는 행위가 참 어려웠다. 물론 지금도 어렵다. 문학 작품이라면 어쨌든 벌어져야만 하는 드라마틱한 상황에 쓰는 내가 더 깊게 빠져드는 탓이었다. 이게 글쟁이로 밥 벌어먹고 살 만큼의 소질이 있는 건지, 그저 취미로 머물러야 하는 건지도 가끔 헷갈렸다. 이제는 '글 쓰는 걸 좋아한다'라는 크고 큰 덩어리로 뭉뚱그려서 말하기는 한다.

 

가끔 삶이 버거우면 내 인생조차도 감당하기 벅차서, 타인의 인생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일 따윈 하지 않아야겠다고 마음먹곤 했다. 하지만 요즘은 너무나도 상세하게 사람 대부분의 인생들이 공유되는 시기라서- 알고 싶지 않았던 정보를 한 움큼 손에 쥐고는 괴로웠던 적도 왕왕 있다. 적당하게 좋아하는 사람들의, 캐릭터들의 극적인 순간에 순식간에 몰입해서는 과열된 감정을 쏟아내는 일이 가끔 버겁다. 한참을 지나버린 과거의 나쁜 기억 한 조각을 발견하고, 이 세상에는 절대 없을 것이 분명한 펜시브라도 가진 양 순식간에 그 기억 속에 빠져드는 일 또한 어렵다. (롤링 여사를 무시하는 건 아니다. 그녀의 잦은 설정 충돌에 일개 독자는 꽤 많이 실망했었지만.. 여전히 그 세계관을 사랑하기도 하니까.) 오늘도 일하다가 갑자기 인쇄소 입장에서 고민하다 일을 키우곤 하는 바보 같은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성향이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이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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