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_삶은 버스
삶은 버스를 운전하는 것과 같아. 많은 사람들이 타고 내리겠지만, 누군가에게 운전대를 내어줘선 안 돼.
버스는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세 공간 중 하나다. 집, 사무실 다음으로. 나는 하루에 두 시간쯤을 출,퇴근길 번잡한 버스에서 보낸다. 운전 면허는 있지만 차를 살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운전 자체를 좋아하지 않아서다. 편안하고 사적인 공간에 머무르며 대중교통보다는 더 빠르고 간결한 경로로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음에도, 운전이라는 행위 자체가 내게 주는 스트레스가 더 강렬한 탓이다. 나는 내 운동신경도 믿지 못하고- 더군다나 혼자만 잘 한다고 해서 도로 위의 그 복잡한 사정들이 전부 해결되는 건 아니기도 한 이유다. 비슷한 이유로 택시 타는 걸 불편해하는데, 남의 사적 영역에 끼어들어 (실상 나보다는 훨씬 전문가일) 기사님들의 운전에 이런저런 싫은소리를 속으로만 보태는 일이 꽤 잦은 탓이다. (그래도 지금은 출장가는 날 새벽에 택시를 타고 공허한 도로를 달리는 게 퍽 익숙해졌다.) 이런 나에게 버스는, 거의 예측 가능한 시간에 목적지를 오갈 수 있게 해주는 괜찮은 교통 수단이다. 아직 내가 사는 동네는 도보 혹은 버스로 웬만한 상황들이 다 해결이 되는 곳이기도 하고.
버스를 소재로 한 이야기들 중 항상 제일 처음으로 떠오르는 건 하나다. 직접 들었던 건 아니지만, 김동률 아저씨가 라디오를 할 때의 이야기였는데- 딱 6개월을 하고는, 이 라디오라는 게 너무 행복한 나머지 본인의 '창작의 영감'을 잃어버릴 것 같다며 한 이야기였다. "버스를 탔을 때, 이 자리가 너무 안락하고 좋아서 종점까지 앉아서 갈 수는 없지 않겠냐" 라는. 타고 내릴 때를 정확하게 아는 게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한 대중교통의 본질을 꿰뚫은 이야기였다고 할까. 출근길에 우연히 만난 한적한 버스가 아무리 반갑더라도 정작 내 목적지인 회사로 데려다 주는 노선이 아니라면 타면 안 되는 것처럼. 이 얘기를 하다 문득 떠오른 건데, 출근하던 어느 하루에 버스 옆구리에 적힌 목적지를 잘못 읽어서 -그러니까 엉뚱한 곳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는 얘기다- 10분이면 도착할 곳을 버스를 다시 환승하고, 택시를 타서야 겨우 도착한 적이 있었다. 그야말로 정신이 번쩍 드는 출근길이었는데, 이와중에 그 한적한 버스 라디오에서 나오던 건 김동률의 '출발'이었다는 게 웃음 포인트였다. 정말 '아주 멀리까지 가 보고' 말았으니.
언젠가부터 하나의 루틴이 되어버린 웹소설을 보는 중에도 최근 버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 만났다. 각 캐릭터의 개성, 매력이 뚜렷하면서도 전체적으로 글에서 사람을 보는 시선이 따뜻하고 다정해서 가끔 울컥하는 '로즈빈' 님의 글 <찐한 고백>. 여주인공은 평범을 넘어 이상적인 가정에서, 끈끈한 가족애로 똘똘 뭉친 부모님과 함께 살며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인간관계로 때로는 상처를 받고 힘겨워하는 딸에게 아버지가 건넨 말이 있었다. "삶은 큰 버스를 운전하는 것과 같아. 많은 사람들이 타고 내리겠지. 하지만 네 삶을 운전하는 운전대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면 안 돼".
지금 나는 하나의 노선도를 만드는 버스 운전사 같다. 물론 어느 정도 정해진 길은 있었지만, 갑자기 방향을 틀기도 했고 어느 한 동네를 돌고 돌기도 했다. 어느 곳에 멈추었는지, 어느 승객을 얼마나 태우고 그들이 내 운행경로에 얼마나 관여했는지 또한 물론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일은 역시 최종 목적지가 아닐까 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최종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찾는 것. 혹여 지금까지 믿고 나아갔던 방향이 아닌 것 같다는 판단을 한다면 언제든지 다시 돌아나갈 수 있는 용기와 함께.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지 않고, 어찌되었건 나와 닿아있어 내 버스에 영혼 한 조각을 실었을 누군가의 인생에 영향을 주고 그들로부터 영향을 받으면서. 그렇게 함께.